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남아프리카 공화국 (문단 편집) == 정치 == ||<-100> 남아공의 정치 정보 || || [[부패인식지수]] || 44 점 || [[2021년]], 세계 70위[* [[https://www.transparency.org/en/cpi/2021|#]]] || || [[언론자유지수]] || 75.56점|| [[2022년]], 세계 35위[* 수치가 높을수록 언론 자유가 있는 국가, 언론자유 최상은 100점, 언론자유 최악은 0점. [[https://rsf.org/en/index|#]]] || || [[민주주의지수]] || 7.05점 || [[2021년]], 세계 44위[* [[https://ko.wikipedia.org/wiki/%EB%AF%BC%EC%A3%BC%EC%A3%BC%EC%9D%98_%EC%A7%80%EC%88%98|#]]] || 1910년에 [[대영제국]]의 [[자치령]]으로 출범한 [[남아프리카 연방]]은 영국의 예를 따라 [[의원내각제]](의회제)를 채택했다. 1950년대 초반까지는 컬러드, 아시아계도 제한적으로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었으나[* 백인 남자는 모두 투표할 수 있었지만 컬러드, 아시아계는 일정 이상의 재산을 보유한 사람에게만 투표권이 있었다.] 1953년 선거에서도 국민당이 승리를 거두면서 연합당의 표밭[* 컬러드나 아시아계 유권자들이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을 시행하는 정당인 국민당에 투표하지 않았다.]인 컬러드와 아시아계 유권자들의 피선거권을 없애고 몇 명의 의원들(그것도 백인)만 뽑을 수 있게 투표권도 제한했으며 1970년대 들면서 이마저도 없애버렸다. 아파르트헤이트 원칙에 따라 따로 의원을 뽑자고 명분을 내세우며 따로 의회를 만들었긴 했는데 권한이 별로 없다보니 허수아비나 마찬가지라 실상은 완전 폐지된 거나 다름없었다.[* 아파르트헤이트 당시 동아시아계 중 일본계, 대만계, 홍콩인들은 honourary white, 즉 '''[[명예 백인]]'''으로 준 백인 대접을 받아 백인 지역에서 윤택한 삶을 살 수 있었다. 한국계의 경우에는 일본계/대만계와는 달리 국가적 차원의 대우가 아닌 일본인/홍콩인 등과의 혼동에 의해 비슷한 대접을 받았다고한다. 아파르트헤이트를 겪은 한국계들의 증언으로 당시 남아공은 유럽의 선진국과도 같았다고 말한다. 반면 중국 대륙 출신들은 흑인과 같이 취급당해 차별받았다. 그런데 1994년에 아파르트헤이트가 철폐되고 흑인 경제 육성 정책(BEE)이 시행될때 중국인들은 차별받았던 역사 때문에 '''흑인과 같은 대접'''을 보장받아 유리한 위치를 점하게 되었다.] 1980년대 들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게 되자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을 조금 완화했는데 이때 백인들만 참여할 수 있었던 의회를 백인 의회, 컬러드(흑인-백인 혼혈) 의회, 아시아인 의회로 나눈 것. 다만 컬러드 의회와 아시아인 의회는 권한이 미약했는데, 인구의 90% 가까이 차지하는 유색인종 의석이 10% 겨우 되는 백인 의원석보다 적었다.[* 1960년 샤프빌 시위와 1976년 소웨토 학생운동 같이 이전에도 반 아파르트헤이트 시위가 있었지만 격화된 건 1980년대였고 또 가장 큰 이유는 불평등한 삼원제 때문이었다.] 그래서 삼원제가 시행했을 당시엔 컬러드와 아시아인들의 투표율이 매우 저조했다. 어쨌거나 80년대 후반-90년대 들어 아파르트 헤이트 정책을 완전히 폐지하는 과정에서 흑인 의회도 추가해 사원제로 전환하는 방안도 나왔지만 협상 끝에 양원제로 전환되었다. [include(틀:남아프리카 공화국 의회의 원내 구성)] 1994년 이후 현재까지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일단 대통령이 국가원수와 정부수반을 겸하지만, 대통령과 부통령이 직선제가 아니라 [[의회]](하원)에 의한 간선제고, 장관들도 의원 중에서 뽑히며, 또한 대통령이 제한적으로 의회를 해산하거나 의회가 대통령을 불신임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지는 등 [[의원내각제]]에 가깝다. 즉 대통령이 의원내각제 국가에서의 총리와 같은 역할인 샘이다. 대통령은 하원의원 중에서 선출되지만 대통령과 하원의원은 겸직이 불가능하여 대통령 당선인은 하원의원을 사직해야 한다. 대신 대통령 임기는 하원의원 임기에 종속되지 않고, 하원의원과 같은 5년으로 정해져 있으며 재임이 가능해 최대 임기는 10년이다. 제1정당 대표직을 잃는다고 해서 대통령을 사퇴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실제로는 [[당 대표]]직을 잃게 되면 [[레임덕|대통령으로서의 공직 수행에 큰 타격이 오기 때문에]] 당 대표직을 잃으면 오래 못 가 사임하게 된다. 이 때 하원에서 대통령 선거를 다시 치르게 된다. 1994년 선거부터 전국단위 완전 [[비례대표제]]와 권역별 비례대표제로 국회의원을 선출하고 있다. 이는 아파르트헤이트를 이끈 [[국민당(남아프리카 공화국)|국민당]] 정부가 행했던 게리맨더링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도입된 것이다. 이로써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백인은 인구 수 이상의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되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선거제도의 특징으로는 다른 비례대표제를 채택한 국가들과 달리 남아프리카공화국은 특정 득표율 이하 득표한 정당을 당선되지 않게 하는 [[봉쇄조항]]이 없어서, 0.2% 득표한 정당이 의석을 획득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역대 선거 결과를 보면 [[아프리카 민족회의]]가 모든 선거에서 과반 이상의 득표로 승리해서 군소정당 난립으로 인한 혼란은 나타나지 않는다. 흑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법적으로 인종차별은 철폐되었다. 선거에 있어서도 완전 비례대표제와 압도적인 흑인 인구로 인해 언제나 흑인 후보가 백인 후보에게 승리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구체적으로 [[아프리카 민족회의]](ANC)의 득표율이 보통 60% 초-중반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2000년대 후반부터는 점차 득표율이 떨어져가고 있지만 제1야당인 [[민주동맹]](굳이 계보를 따지자면 남아공당-[[연합당(남아프리카 공화국)|연합당]]-진보연맹당-민주당계열)의 득표율이 20% 초반(그나마도 이것도 많이 올린 편)인지라 여전히 압도적이다. 그래도 [[비례대표제]]를 채택한 덕택에 의석점유율은 국민당이 대놓고 인종차별을 펼쳤을 시절보다는 낮은 편이지만 득표율 자체는 국민당 독재 시절보다는 높은 편이다. 아파르트헤이트 철폐 이후 흑인 대통령 및 그가 임명하는 각료와 공무원들에게 정치적 권력이 집중되었다. 흑인이 80%인 나라다보니 자연스런 현상이기는 하나 그 과정에서 사회 혼란이 불거지고 공무원 부패가 심각하여 홍역을 치르기도 했다. 그래도 아파르트헤이트 철폐 25년이 지나면서 이런저런 게걸음을 한 적이 있을지언정 흑인 중심 공무원사회도 안착을 했다. 남아공 출신 유명 코미디언인 [[트레버 노아]]가 2009년 쯤 1994년 이후 남아공의 대통령으로 드립을 친 적이 있다.[[https://youtu.be/nihDRSuTG6o|#]] 내용인 즉슨: * '''[[넬슨 만델라|만델라]]가 대통령이 되었을땐 백인들이 전부 떠나겠다 했지만 다 남았다. 만델라는 위대한 인물이었으니까.''' 만델라는 '''평화, 화합, 공존'''을 주장했고 비록 흑인들 사이에 백인에게 복수하자는 적개심이 팽배했지만 27년 동안 감옥살이에 온갖 탄압을 당한 원로 어르신이 말하니 다들 수긍할 수 밖에 없었다. 물론 반대세력도 있어 대표적으로 만델라의 부인 위니 만델라가 백인에 대한 전면적인 복수 및 무장투쟁을 주장하자 만델라는 그녀와 '''이혼''' 까지 하는 선택을 두었고 결국 평화적으로 흑백 정권교체를 이뤄내 아파르트헤이트 최후의 대통령인 드클레르크 와 함께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다. * '''[[타보 음베키|음베키]]가 대통령이 되었을땐 백인들이 "드디어 우리가 다 쫓겨나는구나"라고 생각해서 전부 [[호주]]로 가려고 했다. 하지만 백인들은 쫓겨나지 않았고 음베키가 쫓겨났다'''. 남아공의 아프리카化는 만델라가 퇴임한 뒤, 음베키 정권 시절 시작되어 급격히 실현되었다. 이에 위협을 느낀 남아공 백인들은 주로 호주로 많이 이민을 떠났다. 호주에서도 주로 서부에 있는 [[퍼스]]에 갔고 남아공 이민촌이 있다고 한다. 남아공과 기후가 비슷해서라나.[* 실제로 남아공 백인들이 가장 많이 이민가는 곳이 호주이다. 기후도 비슷하지만 영연방 국가다 보니 문화와 생활 양식도 비슷하기 때문에 남아공 사람들, 특히 백인 농민들 입장에선 가장 쉽게 이민을 고려할 수 있는 곳이다. 이 외에도 뉴질랜드로도 많이 간다.] 음베키는 2008년 9월, 임기종료 7개월을 앞두고 하야한다. * '''[[칼레마 모틀란테|모틀란테]]가 대통령이 되었는데 마치 [[인앤아웃|In&Out]]이었다. 백인들은 이름 발음조차도 어려운 들어보지도 못한 사람이 선거도 없이 갑자기 대통령이 돼서 다 도망가려고 했다.''' 2008년 9월~2009년 4월 집권. 음베키 시절 부통령이었다가 음베키 하야 후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임기가 짧은 이유는 그가 후대 대통령 주마가 선출되기까지의 과도정부 역할만 했기 때문. * '''[[제이컵 주마|주마]]가 대통령이 되었다. 확실히 많은 것이 달랐는데 왜냐하면 이제는 흑인들도 호주로 가려면 얼마쯤 드냐고 고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주마의 과거 극단적인 백인탄압을 '''지향'''하는 발언으로 문제가 되었고 비리스캔들이 잦았는데다 성추문도 심해 강간으로 기소당한 적도 있고[* 에이즈 단락에 나온 주마의 발언이 이 때 나온 것이다. 성폭행 피해자로 지목된 여성이 에이즈 환자인 것으로 밝혀졌는데 이 때 "30분 내에 샤워했으니 괜찮다"는 발언을 했다.] 오랜 친구의 딸과 관계해 혼외자를 낳기도 했다. 비전도 그렇고 도덕성도 없는 인물이 대권후보로 떠오르니 같은 출신민족인 [[줄루]]족을 제외하면 흑백 가릴거 없이 모두 주마를 꺼렸고 '''국가붕괴'''까지 염려했다. '''그리고 집권 후 몇년 뒤 정말 현실이 되었다.''' 집권당 ANC가 2016년 지방선거 때 제1도시 요하네스버그에서 백인정당 취급받던 DA 에게 패배했을 정도로 신망을 잃었고 현재진행형 인 주마의 임기 도중 '''9번의 탄핵시도'''가 있었다. 물론 ANC의 반대로 전부 부결됐지만 그만큼 주마 때문에 '''만델라의 정당'''도 흔들릴 정도. 일례로 만델라가 서거한 2013년 12월 만델라의 장례식이 소웨토 FNB 스타디움에서 열렸는데 당시 남아공 인들은 조문 온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의 조의 연설에 부부젤라와 환호성으로 응답했지만 정작 자국의 대통령인 주마의 연설엔 한도끝도 없는 '''야유'''로 대했다. 실제로 주마는 2009년 선거에서 당시 '''91세''' 고령으로 노쇠해 집에서 요양하던 만델라를 끌어내 자기 선거운동에 이용하기도 했으니 비판을 받을만 했다. 그리고 주마는 2018년 2월 14일 집권여당 아프리카 민족회의의 리콜로 인해 하야했다. 2012년 마리카나 광원 파업 때 일어난 경찰 학살 사건[* 실탄을 사용한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파업 중인 광원 44명이 사망한 사건.]과 주마의 부패 추문을 계기로 [[아프리카 민족회의]]의 가장 중요한 지지기반인 남아프리카노동조합회의(the Congress of South African Trade Unions, COSATU)[* 반(反)[[아파르트헤이트]] 투쟁에 적극 참여한 노동운동가들이 주도로 창립한 남아프리카 공화국 내 최대 규모 노총이다.], 코사투에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몇 년간에 걸친 논쟁과 내부투쟁 끝에 결국, 2017년 코사투 내 두 번째 규모 노동조합이었던 남아프리카금속노동조합(National Union of Metalworkers of South Africa, NUMSA)을 포함한 일부 노동조합이 코사투를 탈퇴했다. 남아프리카금속노동조합을 포함한 코사투 이탈 노동조합들은 새로운 노총 남아프리카노동조합연맹(South African Federation of Trade Unions, SAFTU)을 결성했다. 새롭게 결성된 남아프리카노동조합연맹은 기존 [[아프리카 민족회의]]를 통한 노동자정치세력화와 사회개혁 추구가 실패했음을 선언했고 곧이어 새로운 노동자정치세력화가 필요하다고 선언했다. 결국 2018년 7월부터 새 노총 주도로 사회주의혁명노동자당(Socialist Revolutionary Workers Party, SRWP)이 창당 과정 중에 있다. 새롭게 창당되고 있는 이 정당은 선거에 참여한 적이 아직 없으므로 각급 의회에 의석은 없다. 그러나 단일 노동조합으로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내에서 두 번째로 규모가 큰 남아프리카금속노동조합(National Union of Metalworkers of South Africa, NUMSA)의 지지와 후원을 받고 있으므로 새로운 정치적 변수로 떠오를 수도 있다. 이 정당은 [[경제자유투사당]]과는 달리 노동조합에 기반을 두고 있다. 2019년 총선에서 [[아프리카 민족회의]]가 '''57.5%'''을 받았는데, 첫 평균 60% 지지율을 무너졌다. 오히려 경제자유투사가 대약진하였다. 야당 민주동맹을 대신해서 자유전선 플러스도 조금 약진했다. 특이하게 이슬람 정당인 알 자마아(Al Jama-ah)가 원내진입하였다. 남아공 헌법에 따라 기존 부족들의 정치체제와 관습법을 인정한다. 그래서 유력 부족의 [[족장]]들은 정식으로 국왕으로 대우 받는다. 그래서 [[비주권군주제|공화국이지만 가끔 부족 왕]]이 서거했다거나 즉위했다는 뉴스를 볼 수 있다. 남아공에서 인구수가 많고 세력이 큰 [[줄루족]]의 왕 같은 경우 정치적 실권은 없지만 전통문화 보존이나 큰 토지를 신탁통제하고 있어 부족 정치적으로도 꽤 영향력이 크다. 2021년 3월 들어 줄루 국왕이 코로나19로 갑자기 승하하자 새 국왕의 옹립을 두고 잡음이 일어났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hm&sid1=104&sid2=234&oid=001&aid=0012366517|기사1]],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1&aid=0012382274|기사2]] 따라서 남아공의 내각에는 전통협치부 (Cooperative Governance and Traditional Affairs) 라는 장관급 부처가 2009년에 설립됐는데 각 지자체의 행정을 감독 및 지원하며 부족사회와 공공기관의 사이를 조율하는 요직이다.[* 2023년 현재 장관은 Nkosazana Dlamini '''Zuma''' 로 보건과 외교 전문가로 화려한 커리어가 있으며 그 [[제이컵 주마|주마]]의 전 부인으로 유명하다. 여담으로 남아공의 코로나19 방역조치는 모두 이 사람이 짰다.] 2022년 1월 12일에는 [[코이산족]]의 왕이 [[남아공]]의 공용어에 코이산어를 포함해 달라면서, 대통령궁 앞에서 대마초를 재배하는 시위를 벌이다가, 3명의 시위자들과 함께 체포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https://news.livedoor.com/article/detail/21502555/|관련기사]]. [[남아프리카 공화국 헌법]] 전문(全文)은 해당 문서 참조.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